정명훈 논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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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한번에 올라가지 않아서 나눠 올립니다.

 

 

푸르트벵글러는 나치 정권에 이념적으로 동조하지 않았고 나치 정권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괴벨스가 그 당시 어떠한 권력을 휘둘렀는지 생각해 보면 그에게 공개적으로 항의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마치 자신의 사형선고에 스스로 서명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하지만 그는 나치 정권이 만든 중요한 인물 명단 중 가장 중요했던 ‘신의 은총을 받은 3인의 독일 예술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나치 정권조차도 그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니 리펜슈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아주 적극적으로 나치당과 히틀러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념을 선전하는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추상적인 음악과는 달리 영화라는 것은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그 선전효과는 훨씬 더 폭발적이다. 
6백만명의 유태인들과 수천만명의 유럽인들이 전쟁을 통해 목숨을 잃었지만, 자신은 101세까지 장수를 누렸고, 평생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합리화하는 위선을 보였다. 독일 사회에서는 그녀의 정치적 행보를 철저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그녀의 영화를 만드는 능력에 있어서는 그것과 상관없이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물론 그녀의 예술적 감각은 우리 시대와 맞지 않지만.) 


나치 정권하에서 활동하며 권력을 휘둘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음악이 나치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음악 중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음악 때문이지 그의 정치적 행보 때문이 아니다. 


예술가들의 정치적 행보가 그들의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고, 이것은 또 거꾸로 보면 그들의 예술적 업적이 정치적 행보를 합리화해줄 수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던 두 지휘자의 음악이 너무 훌륭해서 누군가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듣는다 해도 그것이 그들의 범죄에 대한 면죄부는 될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16세기 작곡가 제수알도는 심지어 살인자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예를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별로 마땅치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난 범죄에 대한 비판의 잣대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글이 장황하게 되어버렸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의 요지는 우리나라가 엉뚱한 등식을 통해 사람을 비난해, 예술가로 하여금 이념과 도덕의 눈치를 보게 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것이다. 


혈세와 상위 1% 


인터넷 공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왜 시민의 혈세를 상위 1%를 위해 쓰냐고 비난하는 것을 읽었다. 서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반 사람들에게 억, 억, 소리가 나는 서울시향 예산과 상임지휘자 연봉에 대한 논란은 괴리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서울시향의 활동이 상위 1%들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시향 음악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그 중에는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마스터클래스에서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형편이 넉넉치 않은 학생이 여럿 있다. 또 서울시향은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부유층이 아닌 보통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서울시향의 음악을 (말하자면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의 수를 굳이 전체 인구에 비교해 1%라 하자. 서울시는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1%를 위한 사업을 50개를 하면 50%를 위한 것이고 100개를 하면 100%를 위한 것이 된다. 100%를 위한 사업만 해야 된다면 매일 도로공사만 해야 된다는 말이다. 
시민의 세금(혈세라는 말은 너무 과격해서 세금이라 하겠다)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써야 된다는 사실은 너무 명백하다. 하지만 개중에는 ‘내 돈을 왜 나하고 상관없는 데 쓰느냐’는 식으로 과격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독일에서 독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공부했고, 지금은 일을 하며 세금을 내고 있다. 내가 낸 세금은 어디론가 흘러들어가 누군가를 위해 쓰여질 것이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낸 세금이 쓰일 수도 있다. 이것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일종의 약속이다. 
그리고 내가 잘 몰라도,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라도 그것의 존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돈, 돈, 돈 


위의 제목은 연봉에 대한 인터넷 공방 중 한 네티즌이 올린 댓글이다. 인터넷을 포함한 한국 언론에서 항상 느껴왔던 것은 돈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존경심과 부러움과 시기심의 대상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멸시와 무시의 대상이 된다. 
언론에서는 매일 누가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투자했고, 얼마를 사기쳤고, 얼마를 횡령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어떤 사고로 유족이 얼마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기사의 댓글에는 나에게도 저런 행운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부러움이 담겨져 있다. 
한 개인의 명예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누군가가 돈에 관련해 구설수에 오르면 사람들은 촉각을 세운다. “누가 얼마”하는 순간 벌써 사냥은 시작되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범죄였는지 아니었는지, 행정착오였는지 오해였는지 상관없이 당사자들은 도덕적 치명상을 입는다. 중죄에도, 불법주차에도 똑같이 종신형이 선고되는 일과 같은 것이 서슴지 않고 벌어진다. 
이번 논란이 음악을 모르는 일반사람들에게까지 강력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논란의 원인이 돈이라는 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번 논란 중 언론에 김상수씨가, 내가 서울시향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마치 내가 부당이득을 취한 것같은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내가 당한 부당함은 정명훈이 당한 부당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해명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그런 발언에 불쾌함을 보이는 것조차도 그가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썼다는 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문제를 제기할 아무런 의무도, 자격도, 권리도 없다. 
(만일 일반 사람들이 내 수입이 그가 주장하는 것에 못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내 스스로에게 질문해봤다. 솔직히 나는 내 몸값을 5억원까지 올려준 한 이름모를 네티즌에게 감사한다.) 


단지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많다, 적다’라는 것은 비교의 대상이 필요한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 비교의 대상이란 그 당사자가 하는 일과 의무와 책임이다. 이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숫자만 가지고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 (김상수 씨에게 정명훈의 지휘는 그저 손을 흔드는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은 그저 현대음악을 큐레이트 하는 일이다.) 수입에 부당하고 타당한 절대적 숫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다, 적다’라는 판단은 일단 그 사람의 일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그의 정신적 혹은 육체적 노동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그 사람이 그 일을 통해 한 단체와 사회에 어떠한 책임을 지고, 어떠한 영향을 주느냐가 고려된 상태에서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 즉 회사원, 공무원, 노동자 등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숫자에 차이가 있다고 원칙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상천외한 세 가지 주장 


지휘자 정명훈의 체류기간에 대해 논란이 일어났다. 
그가 112일밖에 한국에 체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임지휘자 자격이 없다 한다. 
(나는 그가 112일씩이나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지어는 비행기를 타고와서 지휘를 하는 게 말이 되냐 한다. (그러면 배를 타고 와야 한단 말인가?) 
물론 아무도 그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그는 365일 한국에서 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논란을 제기한 사람은 얼마 후 여론을 의식했는지 그의 체류기간을 ‘최소한 5개월’로 관대히 내려줬다. 
지휘자들은 원래 신출귀몰하는 존재들이다. 오늘 베를린에서 리허설, 내일 아침 파리에서 드레스 리허설과 저녁 공연, 모레 아침 런던에 갔다 오후 늦게 다시 베를린으로 와 리허설을 하는 식이다. 그렇게 바쁜 사람이 112일 있는 것에 불만이 있다면 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지 못하도록 계약서에 다음 조항을 넣자.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는 계약시 여권을 압수하고 출국 정지 시킨다.” 


정명훈은 너무 비싸니 작곡가 진은숙이 저렴한 가격에 지휘를 하면 안되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한다. 나도 몸값이 꽤 비싼 사람이다. 서울시향 스태프들 중 음대 출신이 꽤 된다. 그들 중 누군가가 상임지휘자를 하면 훨씬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지방 어디에서는 왜 지휘자가 대통령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느냐 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지휘자의 몸값은 국제적 무대(혹은 시장)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정치가에게 국제적 시장이란 있을 수 없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민주화를 이룬 훌륭한 정치인을 중동이나 아프리카로 수출해 민주화를 이루게 하고, 얼마만큼 공적이 있느냐에 따라 그들의 몸값이 정해질 것이다. 그러면 이런 정치가들을 위한 국제적 매니지먼트가 생겨 더 능력있는 정치가와 계약하기 위해 서로 경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정치가는 임기에 따라 교체가 가능하고 그들의 권력은 그 나라의 국경을 넘는 순간 소멸된다. 국빈 대접을 받고 협상을 할 수는 있어도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직책을 맡았느냐를 떠나서 한 예술가의 절대적 가치와 위치는 그 스스로가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평생을 거친 스스로의 연마를 통해 도달한 것이고 아무도 그를 거기서 끌어내리거나 해고할 수 없다. 이것이 예술가와 정치가의 차이이다. 
프란츠 리스트가 살았던 시대에는 음악가들이 하인 취급을 받아 뒷문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리스트는 당당하게 정문으로 출입했고, 자신의 연주중 잡담하거나 낄낄거리며 웃거나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대는 왕족과 귀족들을 서슴지 않고 나무랐다 한다. 왕족과 귀족은 얼마든지 있지만 리스트는 유일하기 때문이다. 


베를린 필 식의 지휘자 선발 


서울시향도 베를린 필같이 여러 지휘자를 초청해 경합을 시키고 단원들의 투표로 상임을 뽑아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렇게 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누구를 데려올까? 
정마에가 홍마에, 문마에, 이마에(이들은 물론 가상의 인물들이다) 등과 경합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정마에와 서울시향이 자존심 상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도 클라우디오 아바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 다니엘 바렌보임을 데려오고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카라얀을 무덤에서 꺼내오자. 
연봉을 차치하더라도 과연 이들이 오려고 할까? 
만약 온다면 현재 정마에의 조건으로 계약하려 할까? 
그들은 엄청난 보수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엄청난 보수를 최소한도 50억이라 가정해보자. 이들 중 누군가가 50억을 받고 상임지휘자로 일을 해도 그에게 서울시향이 발전하는 것이 중요할까? 이들이 진정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까? 
그리고 만일 그 경합에서 정마에가 뽑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연봉도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 정마에에게도 50억을 지불할 것인가? 
외국 지휘자가 뽑히면 50억, 정마에가 뽑히면 13억? 이것은 명백한 사대주의이다. 


진중권 


내 동생이 이 논란 중에 지휘자 정명훈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얘기를 시향을 통해 들었을 때 나는 매우 놀랐다. 어떤 사람들은 내 수입원이 끊길 수도 있다는 데에 화들짝 놀란 진중권이 황급히 달려들었다는 자유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애’라 판단한다.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우리 부모님이 들었다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믿을 수 없는 얘기겠지만 난 그 당시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논란이 계속되는 수 주동안 단 한번도 통화하거나 만나지 못했다. 
우리집 삼남매가 (원래는 4남매지만)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셋이 같이 인터뷰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요청이 여러 번 들어왔지만 단 한번도 응한 적이 없고 우리 셋을 같이 보여주는 단체 사진도 없다. 내가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했던 초기에는 몇 년 동안 심지어는 우리가 남매라는 것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다 개인주의자이며 자유주의자이다. 반경 10킬로미터 이내로의 접근은 서로 견디지 못한다. ‘궁지에 몰렸으니 글 좀 써줄래?’라는 말은 우리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동생이 얼마 전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공개석상에서 동생을 옹호한 적이 없다. 
몇년 전 동생이 지방 어디에서 강연장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다급하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인사동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내 반응은 단 한 마디 ‘알아서 잘해봐’였다. 그렇기 때문에 진중권은 내가 시향에 몸을 담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김상수 씨의 생각에 공감한다. 


나는 독일에서 27년, 베를린에서만 24년이라는 시간을 살았다. 한국에서 산 24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독일에서 산 셈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김상수 씨 칼럼을 통해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히틀러 같은 정치가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가 발칵 들고 일어날 일이다.) 
그는 독일에 체류하는 나보다도 더 독일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지휘자들의 연봉에 관한 것이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김상수 작가가 베를린에 체류한 적이 있었고, 어느날 지하철에서 우연히 사이먼 래틀을 봤다고 한다. 설마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 5만9천유로를 연봉으로 받는 사람이 어떻게 감히 택시를 타겠는가? 나는 몇년전 유아용품 파는 가게에서 세일을 할 때 어린 아들 요나쉬를 데리고 나온 래틀 부부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나는 왜 이렇게 세계적인 지휘자가 이런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가 의아해 했다. 하지만 지금 그 답을 얻었다. 바로 연봉 때문이었다. 
김상수 씨가 서울시향이 베를린 필 같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나는 ‘한국이 독일인가?’하며 잠시 갸우뚱했다. 나는 이 두 나라와 두 오케스트라를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한번도 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를 머리 속에서 연결시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의 주장은 나에게 마치 남북통일을 독일 통일의 방법을 본따서 하자라는 주장같이 들렸다. (국경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쓰나미같이 넘어오는 북한 주민 하나하나에게 환영비조로 10만원씩 지불하는 것으로 통일의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글의 정연한 논리에 금방 설득당했다. 베를린 필은 너무나 훌륭한 악단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시향을 베를린 필 운영방식으로 이끌어나가야 된다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국가에서 서울시향의 예산을 10배쯤 늘려주고, 외국 유수오케스트라들도 다투어와서 연주하고 싶어하는 음향좋은 번듯한 전용홀을 지어준다. 많은 전문인력이 투입되어 행정이 원활해지고, 튼튼한 예산으로 매해 편안하게 해외투어를 나간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환상적인가? 
베를린 필을 포함한 모든 다른 독일 단체들의 시스템은 이 나라의 역사와 사회구조, 그리고 국민들의 멘탈리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 생각에는 서울시향이 베를린 필 같이 되려면 한국이 독일같이 바뀌어야 한다. 
독일은 물론 좋은 나라이다. 
신문사 편집장들이 신문이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기사의 팩트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발행된 후 숫자 하나라도 실수가 발견되면 즉시 정정기사를 내보낸다. 타인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은 그것이 단 한 문장이라도, 단어 한 개일지라도 글쓴이가 법의 처벌을 받던가, 최소한 공개사과하며 책임져야 한다. 
좌파 정치인들도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이먼 래틀의 연봉이면 영세민 아파트를 몇 채 지을 수 있다는 엉뚱한 계산을 내놓지 않는다. 우파 정치인들도 왜 우리의 세금으로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을 공짜로 공부시키냐며 불평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통일 후 발생된 빈부격차와 사회빈곤층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베를린 필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시도는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선가게에서 수상인 앙겔라 메르켈이 내 앞에 줄을 서도, 국회의장을 슈퍼에서 만나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거나,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다가가 여기에 싸인해라 저기에 서명해라 하지 않는다. 한국이 이렇게 된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환상적인가. 


독일은 좋은 나라다. 어떻게 하면 한국이 독일처럼 될 수 있을까? 
이런 변화를 정치나 이데올로기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렇게 되려면 한 개인 개인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남들에게 오만하게 당신들을 바꿔라 라고 요구하기 전에, 나와 김상수씨,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바꿔보자 감히 제언한다. 


에필로그 


나는 김상수 작가의 이름을 이번 논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내가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고로 한국 주요 매스컴을 대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그의 서울시향과 정명훈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감해했다. 단순히 ‘팬의 애정’이라고 보기에는 좀 지나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애인이 있으면 좋지만 지나치게 집착을 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한번 상상을 해봤다. 작곡가 진은숙이 어느날 갑자기 쓰던 작품을 미루어놓고 임의의 공공기관, 예를 들자면 한국은행의 경영구조를 비판하고 나선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급여를 내 자신만의 산수법으로 확대, 축소시키며 부당함을 호소하고, 그것의 해결책을 여러가지 변주곡으로 제시한다. 더 나아가서는 화폐통용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이제 물물교환의 시대가 와야 한다며, 그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위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총재는 걸림돌이 되니 갈아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김상수 씨는 자신이 작가이기 때문에 이런 비교가 타당하지 않다고 얘기할 것이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예술가나 작가, 즉 창작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이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김상수 씨는 그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 자료를 수집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서울시향과 정명훈에 대한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사실 그 글들은 서울시향과 정명훈에 대한 정보보다는 글쓴이 자신의 사고 구조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담고 있기는 하다.) 그는 그 글을 발표하기 위해 여기저기 매체를 찾아다니고 수많은 댓글에 성실하게 답변해왔다. 거기에 쏟은 그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 열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서울시향을 구하기 위해 잠시 창작에 손을 놓으신 걸까? 
아니면 서울시향과 정명훈이 등장하는 거대한 작품을 구상중이신가? 
나는 김상수 작가가 본업에 충실해 훌륭한 작품을 남기기를 바란다.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음악을 뒷전으로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나에게 잃어버린 시간이듯이 그에게도 작품을 쓰지 않는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되어야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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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freshsoul님의 댓글

대충 살펴보니 언론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많네요.

저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깔려있는 어떤 선입견, 예를 들면 고매한 사람들이 듣는다. 좋은 클래식 음악가는 인성도 뛰어나야 위대한 예술가의 반영에 들 수 있다. 등과 같은 대중의 선입견과 언론의 선정적 보도의 콜라보로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사실들에 대해 괴소문이 사실인 마냥 확대재생산되는 것이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은 그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정 지휘자의 다소 안일했던 운영과 문제에 대한 대응이 아쉽기도 하지만 박 전 대표와의 문제는 아직 결론이 나온 상황도 아닌데 낙인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열심히 죄인 만들기에 일조하고 있군요. 아 참고로 전 정명훈씨가 연주하는 시대의 음악은 잘 안들어서 (같은 클래식이라도 듣는 시대에 따라 음악이 나뉩니다.) 정명훈씨 팬도 아니고 평소 큰 관심도 없던 사람입니다.1등 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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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댓글2 고슴도치 아이디로 검색 16.01.01.20.10 00
3999 한개만 더 쓰면 4000 내용 없이...댓글2 고슴도치 아이디로 검색 16.01.01.20.08 0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댓글4 풀림 아이디로 검색 16.01.01.15.14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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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님, 밑줄짝님, 안알랴줌님... 새해 출첵 1,2,3등 축하드립니다.댓글8 날품팔이AKA 아이디로 검색 16.01.01.00.25 00
happy new year!!!댓글34 고슴도치 아이디로 검색 15.12.31.18.56 00
X사 사용기 게시판도 망해 가는 중댓글5 nepo 아이디로 검색 15.12.31.12.11 00
촬영자가 느끼는 배터리 지시계의 의미댓글3 nepo 아이디로 검색 15.12.31.11.55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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